
카이사르( Julius Caesar)는 로마 공화국 말기와 로마 제국 초기에 활약한 로마의 정치가, 장군, 및 작가입니다.
그의 이름은 로마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히며, 그의 활약은 로마의 역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들 중 하나로 인식됩니다.
카이사르는 로마에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정치적 요람인 팔라티노 언덕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로마 정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군인, 변호사, 그리고 정치가로서 로마에서 빠르게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공화국 후기, 그의 정치적 적인 포지션은 계속해서 높아졌고, 그는 로마의 지도자로서 일정한 인기와 권력을 확보하였습니다. 카이사르는 공화국 시절에 로마의 성장과 영토 확장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북동부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로마 제국의 영토를 확대하였고, 공화국 시절에는 세력을 키워가며 다양한 대외정책과 내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력적인 포지션은 동시에 그에 대한 반대파의 증가를 일으키게 되었고, 그는 로마의 대표적인 반공화주의자 중 하나였던 파위우스(Pompey)와 쟁탈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의 권력에 대한 욕구는 결국 로마에서의 야심적인 쿠데타를 계획하게 되었고, 그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카이사르의 암살)에 그의 반대 세력들에 의해 암살당하였습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권력 야망과 정치 전략은 로마 제국의 발전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그의 정치적 업적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갈리아 원정
갈리아 원정은 로마의 정치가 겸 군인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지휘한 대규모 군사 작전입니다. 이 원정은 기원전 58년부터 기원전 51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시 갈리아는 로마 제국의 국경 지역으로서, 갈리아인들은 로마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는 등 로마에게 많은 위협을 줬습니다. 이에 카이사르는 로마의 영토를 안정시키기 위해 갈리아 원정을 시작했습니다.
갈리아 원정 중, 카이사르는 전략적인 지리적 위치를 활용하고, 지형을 이용한 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는 작전 중에 로마군의 인원을 증강시키기 위해 로마 외 지역에서 군사들을 모집했으며, 군사들은 긴 원정을 거쳐 갈리아로 진군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 원정에서 갈리아 지역 전역을 정복하고 로마의 영토로 편입시켰으며, 그의 활약으로 로마 제국의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또한 원정 중에 작성한 "갈리아 전쟁기"는 그의 전략과 전술을 기록한 명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원정은 그의 정치적·군사적 업적으로 인해, 그의 성장과 함께 로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Alea iacta est)
원로원과 대립하던 카이사르는 로마법을 따르려니 자신의 파멸이 보이고, 따르지 않으려니 내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결국 카이사르는 내전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 병사들 앞에서 연설하며 이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이후에는 불확실한 결정이나 대담한 선택을 하는 상황에서 자주 인용되어 왔습니다. 카이사르의 이 말은 지금까지도 그의 용기와 결단력을 상징하는 문구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카이사르와 대립관계에 있던 사람들
- 폼페이우스(Pompeius) : 로마의 대장군이자 정치가로, 공화당의 지지자로서 카이사르와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카이사르에게 패배하였습니다.
- 마르쿠스 루키우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 : 로마의 부호(富豪)이자, 유능한 군사로서 카이사르와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르티아(Parthia) 원정 중에 전사하면서 카이사르의 권력을 더욱 키우게 되었습니다.
- 카토(Cato) : 공화당의 중심인물로, 카이사르의 대립자로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카이사르의 군사적 승리와 함께 죽음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카이사르와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하고 있던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와 가이우스 카시우스(Longinus) 등도 있습니다. 이들은 공화주의를 지지하는 그룹인 "리비고르문(Liberatores)"에 속해 카이사르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했습니다.
카이사르의 죽음
카이사르는 44년 3월 15일, 로마의 공공 장소인 극장에서 열린 Senatus Consultum ultimum을 알리는 선언회의에 참석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카이사르의 암살에 대한 구실이었습니다. 마루스, 브루투스, 카시우스 등 60명 이상의 로마 원귀들이 모여 있었으며, 그들은 카이사르를 향해 칼을 뽑고 그를 습격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처음에는 겨우 자신을 방어했지만, 그러나 그들의 칼에 여러 차례 맞고 결국 땅에 쓰러졌습니다. 카이사르는 그의 가운데서 브루투스에게 "브루투스 너마저?" ("Et tu, Brute?") 라는 말을 하면서 숨졌습니다. 이 말은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를 자신의 지지자로 여겼으나, 그가 자신을 배신한 것으로 깨달았을 때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로마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부활하는 대신, 제국주의 체제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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