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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준호 - 015. 벌써 1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준호가 이 낯선 세계에 온 지 어느덧 1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준호는 이 세계에 점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준호와 아이리스의 첫 만남은 극적이었다. 아이리스가 섀도우 비스트에게 쫓기던 그 날, 준호는 우연히 그녀를 구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리스는 희귀한 치료용 약초를 찾으러 위험한 숲에 들어갔다가 그 괴물을 만난 것이었다.

"저는 약초학자이자 치유사예요," 아이리스가 설명했다. "그 약초로 마을의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려 했죠. 하지만 실수로 섀도우 비스트의 영역을 침범했나 봐요."

준호는 혼란스러움과 호기심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리스 씨... 제가 궁금한 게 있어요. 왜 저를 여기로 데려오셨나요? 저는 낯선 사람인데,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리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그 위험한 상황에서 망설이지 않고 나서주셨죠. 그런 용기와 선의를 가진 사람을 그냥 두고 올 수는 없었어요. 게다가... 당신이 이 세계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죠."

준호의 옷차림 변화는 그들의 첫 만남 직후에 일어났다. 아이리스는 준호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옷은 나뭇가지와 잎사귀로 급하게 만든 것이었고, 몸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아이리스는 자신의 옷 중 가장 큰 것을 준호에게 건넸다. 옷을 입은 준호의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들은 함께 웃으며 이 순간을 즐겼다.

처음 몇 주 동안, 준호와 아이리스의 의사소통은 주로 손짓과 표정으로 이루어졌다. 아이리스는 인내심 있게 준호에게 기본적인 단어들을 가르쳤다.

"이것은 '네루'예요," 아이리스가 보라색 과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네루?" 준호가 조심스럽게 따라 했다.

아이리스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잘하셨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준호는 이 세계의 언어를 조금씩 배워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단어와 문장부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복잡한 대화도 가능해졌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준호는 아이리스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들의 유대감은 더욱 깊어졌다.

언어를 어느 정도 익힌 후, 준호는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미 익힌 창술 실력을 더욱 연마했고, 돌팔매 기술도 꾸준히 향상시켰다. 아이리스는 그에게 이 세계의 위험한 생물들에 대해 가르쳐 주었고, 기본적인 자기 방어 기술도 알려주었다.

"이렇게 손을 쥐고, 몸을 낮추세요," 아이리스가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

준호는 열심히 따라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동작은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숲에서 훈련을 했다. 창을 휘두르고, 돌팔매를 던지며, 그는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나갔다.

준호는 아이리스의 도움에 보답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사냥과 채집에 나섰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오늘은 토끼 두 마리를 잡았어요," 준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이 버섯들도 찾았어요. 먹을 수 있는 거 맞죠?"

아이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요, 준호 씨. 이 버섯들은 영양가가 높아요. 저녁 식사에 좋겠네요."

준호는 또한 아이리스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리스와 함께 약초를 찾아 숲을 탐험하고, 채집한 약초를 정리하고 보관하는 일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준호는 이 세계의 식물과 그 효능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 꽃은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해요," 아이리스가 설명했다. "그리고 이 뿌리는 해열 효과가 있죠."

준호는 열심히 듣고 배웠다. 그의 역사학 지식은 이 새로운 세계의 식물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몇 달이 지나자 준호는 더 나은 무기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이리스의 도움으로 그들은 마을을 방문하여 전문 장인에게 창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 방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준호의 독특한 외모는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일부 젊은이들은 그를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야, 넌 대체 뭐야? 어디서 왔어?" 그들 중 하나가 거칠게 물었다.

준호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저는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과 다르지 않아요. 우리 모두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의 차분한 태도와 깊이 있는 말에 젊은이들의 적대감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마을의 장로가 나서서 상황을 중재했고, 이후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통해 준호는 이 세계에서의 삶이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의 존재가 이 세계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지게 되었다.

준호는 새 창을 들고 연습을 거듭했다. 그의 동작은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고, 창을 다루는 솜씨도 나날이 향상되었다. 이제 그는 더 큰 동물들도 사냥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그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계절이 바뀌고, 준호는 이 세계의 자연 변화에 대해서도 배웠다. 봄에는 형광색 꽃들이 만발했고, 여름에는 밤하늘이 춤추는 별들로 가득 찼다. 가을에는 나무들이 은빛으로 물들었고, 겨울에는 부드러운 빛을 내는 눈이 내렸다. 각 계절마다 준호는 새로운 사냥 기술을 익히고, 다양한 식물들을 채집하는 법을 배웠다.

준호는 이 세계에 적응하면서도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았다. 그는 종종 자신의 세계를 떠올렸다. 새벽 5시에 시작되던 하루, 신문 배달, 대학 수업, 도서관에서의 공부, 그리고 박물관 아르바이트...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먼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준호의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볼 때면, 그는 자신의 세계에서 부모님과 함께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 잘 계신가요? 제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실까요?" 준호는 중얼거렸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참으며.

아이리스는 준호의 이런 모습을 눈치챘다. 어느 날 밤, 그녀는 조용히 준호 옆에 앉았다.

"가족이 보고 싶으신가요?" 아이리스가 부드럽게 물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매일 밤 꿈에서 부모님을 뵙니다. 하지만 깨어나면 더 큰 그리움만 남아요."

아이리스는 준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당신의 부모님은 분명 자랑스러워하실 거예요. 이렇게 낯선 세계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으니까요.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준호는 아이리스의 따뜻한 위로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의 마음에 작은 위안이 찾아왔다. 그 순간, 아이리스의 손길이 그의 마음을 조금 더 특별하게 느끼게 했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을 때, 준호는 그녀의 눈 속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준호와 아이리스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그들은 서로의 문화와 생각을 나누며 깊은 우정을 쌓아갔다. 때로는 서로의 차이점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준호는 아이리스에게 자신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현대 기술, 도시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공부하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리스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신기한 세계네요," 아이리스가 말했다. "당신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다르군요."

준호는 미소를 지었다. "네, 하지만 이 세계도 아름답고 신비로워요.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어요."

1년이 지난 지금, 준호는 이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었다. 그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이리스라는 든든한 친구가 있었고,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도 갖추게 되었다.

준호는 창밖으로 보이는 은빛 숲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세계로 돌아가려 노력해야 할까, 아니면 이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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